바다 건너 온 군함이 한국의 조선소에 들어선다. 최근 미국 해군의 대형 보급함이 울산에 머물게 된 건 단순한 수리가 아니다. HD현대중공업이 미국 해군이 보유한 여러 선박의 정기 정비 사업을 따내면서, 국내 조선업계가 세계 군수 선박 유지·보수(MRO) 시장의 문을 두드린 첫 신호탄이 울려 퍼졌다.

한미 양국이 배의 수리를 매개삼아 경제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조선업이 단순히 배를 만드는 산업에서 글로벌 함정 관리 서비스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시장 진입의 의미와 파장

미 해군함 한국 입항 모습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20조 원’이라는 거대한 미 해군 정비 시장, 그곳에 한국 조선사가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지금까지 미국 함정은 주로 자국이나 동맹국 인근에서 정비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울산의 조선소가 선택받았다. 이는 단일 수주라기보다, 정부가 추진해온 마스가(MASGA) 프로그램이 가시적 성과를 거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이 계약을 계기로 조선산업은 건조와 수리, 두 축에서 모두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비 경험이 쌓이면, 앞으로는 미 해군 전투함·잠수함 등 다양한 선박 건조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군함이 선택한 울산

울산 조선소에 정박한 미 해군함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2007년부터 태평양을 누벼온 4만1000톤급 군수지원함이 울산에 정박한다. 길이만 해도 축구장 두 배에 가까운 이 선박은 9월부터 HD현대미포조선에서 본격적인 리노베이션에 들어간다. 첫 작업은 선체 하부의 따개비를 떼어내는 청소로 시작된다. 이어 외판 보수, 프로펠러 점검, 각종 장비 체크까지, 수십 명의 기술자들이 순차적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수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발견되면 추가 계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고령의 군함에도 ‘새 생명’을 불어넣는 기술이 국내 조선사에 쌓이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더욱 큰 시장 진출의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해외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

미 해군함 한국 정박 모습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이미 필리핀 해군이 보낸 18척의 함정 MRO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부품 수급부터 정기 점검까지 체계적으로 진행돼, 외국 승조원들 사이에서도 신뢰도가 높다. HD현대중공업은 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 해군과의 파트너십도 강화할 계획이다.

조선소 측은 “안벽 활용도가 높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MRO 사업은 수익성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잠재적으로 전투함과 잠수함의 정비, 건조까지 이어지는 확장성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국내 조선사, 미국서 양강 체제 굳히기

지난해부터 한화오션이 미국 해군의 다른 보급함과 급유함 정비 사업을 잇따라 수주한 데 이어, HD현대중공업까지 가세했다. 이제 미국 국방 해상 정비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이 뚜렷한 양강 구도를 그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수주는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대한민국 조선 기술이 미국 시장에서 인정받았다는 신호"라며 의미를 부여한다. 실제로 이번 프로젝트는 향후 양국의 조선 기술 협력이 본격화되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의 지형도 변화

울산에 입항한 미 해군 군함 한 척, 여기서 시작된 변화는 단순한 수리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 미국과 한국의 조선 분야 협력이 전략적 가치를 더하며, 글로벌 군함 유지보수 시장에서 국내 조선사의 입지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이제 조선소는 배를 만드는 곳을 넘어, 노후 함정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기술 집약적 서비스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이 우뚝 서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