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새벽, 지하철 출근길엔 젊은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이른 시간부터 손에 이력서를 쥔 50대, 60대, 그리고 70대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일자리 상담 창구로 모여든다. “나이 먹어 새 출발이 쉽겠냐”는 넋두리도 잠시, 현실적인 생계 앞에 이들은 다시 도전자를 자처한다.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은 과거 이야기다. 퇴직 연령과 연금 수령 시기의 간극, 그리고 일자리 시장의 변화가 맞물리며, 중장년층의 구직 행렬은 올해 들어 뚜렷이 증가했다. 특히 여성 노년층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노후’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일터로 돌아온 이들의 사연이 쏟아진다.

구직 시장에서 달라진 연령 지형

중장년 구직자 증가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올해 ‘벼룩시장’ 구인구직 플랫폼을 찾아온 50대 이상 구직자는 작년보다 10명 중 7명꼴로 늘어났다. 40대 이하 증가분이 10명 중 3명 남짓임을 감안하면, 중장년의 재취업 열기는 단연 돋보인다.

또한 60대와 70대 이상 지원자도 예외가 아니다. 60대는 두 배 이상, 70대 이상에선 무려 두 배 반 가까이 이력서 제출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70대 여성의 구직 비율 변화는, 마치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인상적이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분야는 생산·건설·노무 등 육체 노동 현장이다. 음식 서비스업과 운송·배달직도 인기다. 남성은 운전과 건설 현장으로, 여성은 외식업종으로 몰린다. 선택의 배경엔 생계, 그리고 “아직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다.

보험료와 연금, 그 사이에 놓인 5년

50대 보험료 연금 고민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이들의 재취업 열기 뒤에는 제도적 공백이 자리한다. 국민연금은 만 59세까지만 의무적으로 보험료를 낼 수 있고, 실수령은 만 65세부터다. 은퇴 후 연금까지, 최소한 5년간의 소득 공백이 생긴다.

이 간극을 메우려면 ‘임의계속가입’이라는 제도를 써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신청해야 하고, 보험료도 전부 부담해야 한다. 문턱이 낮지 않다. 실제로 2024년 11월 기준, 이 제도에 들어온 인원은 48만 명뿐이다.

만약 연금 가입 연령을 64세로 연장하면 어떨까. 당장 연금 가입자는 늘겠지만, 기금 바닥은 예상보다 빨리 드러날 수 있다. 국민연금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수령액 증가 속도가 보험료 유입보다 더 빠르기 때문이다.

정책 변화의 갈림길

50대 구직자 이력서 제출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전문가들은 고민이 깊다. 일하고 싶어 하는 고령층이 늘어나는 현실에 제도가 따라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OECD 국가들에 비해 높은 한국의 노인 경제활동률을 감안하면, 연금 제도의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그러나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가입 연령을 서서히 올리면서, 자영업자와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을 위한 별도의 보호장치도 강구돼야 한다.

새로운 일터, 새로운 세대

퇴직의 끝에 다시 시작이 기다린다. ‘은퇴’란 단어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노년의 삶이 더는 쉼이 아니라 또 한 번의 생계 장(場)임을, 일자리 시장의 변화는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언제까지 버텨야 하냐”는 탄식도 들리지만, 그 안엔 하루하루 버티는 뚝심이 함께한다.

이제 중장년층의 구직 현상은 단순한 수치가 아닌,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