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흐름이 고요해 보일 때, 물밑에서는 거대한 조류가 바뀌고 있다. AI 메모리 전장 한복판에서 수십 년간 ‘업계의 맏형’으로 군림하던 삼성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거의 명성과 현재의 현실 사이, 그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최첨단 인공지능 시스템이 도약하면서 메모리 반도체의 주도권도 재편되고 있다. 과연 ‘점유율 17%’라는 숫자가 남긴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SK하이닉스의 62%라는 압도적 성적표는 어떤 파장을 예고하고 있을까. 시장은 술렁이고, 삼성은 반전을 꿈꾸며 다시 움직인다.

판도 변화와 주도권 이동

AI 메모리 시장 점유율 변화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단순히 기술의 싸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 변화의 물결은 훨씬 복합적이다. SK하이닉스가 AMD와 손을 잡으며 HBM 개발에 뛰어든 지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HBM은 게임 시장의 조용한 조연에서 AI 시대의 핵심 부품으로 격상했다.

챗GPT와 같은 대형 AI 서비스가 등장하자,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하늘로 치솟았다. 2024년 2분기 기준, 10명 중 6명이 선택한 제품이 바로 SK하이닉스의 HBM이었다. 반면, 삼성의 점유율은 2명에 채 미치지 못했다. 한때 ‘절대 강자’였던 삼성마저, 인증 절차에 매달리며 뒷걸음질치는 모습이 업계의 화제가 되었다.

삼성의 회복 전략과 기술적 도전

삼성 AI 메모리 기술 경쟁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절치부심 끝에 삼성은 반전의 묘수를 꺼내 들었다. 앞으로 몇 달, 이들의 화두는 ‘속도’와 ‘혁신’이다. 하반기에는 HBM3E의 공급량을 확대하고, 한 단계 진화한 HBM4 인증을 조기에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특히 이번 차세대 HBM4는 경쟁사보다 앞선 미세공정(1c)을 적용해, 기술 우위를 다시 노린다. 이미 엔비디아에 시제품을 건넸으며, 연말까지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동시에, ‘소캠’이라는 새로운 D램 모듈을 통해 AI 서버 특화 시장에서 선두를 겨냥하고 있다.

원가 부담과 시장 환경의 변수

삼성 메모리 시장 점유율 격차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그러나 승부는 단순하지 않다. 신기술과 공정 전환에 따른 비용 상승은 현실적 부담이다. 삼성 역시 최근 실적 발표에서 공급 확대로 가격이 내려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업계에서는 후발 주자인 삼성이 엔비디아와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내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KB증권의 김동원 센터장은 “2025년에는 HBM 시장도 수요자가 주도하는 구도로 바뀔 수 있다”며, 세계 최고 D램 생산능력을 가진 삼성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것이라 내다봤다.

시장의 시선과 미래 전망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판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두 거인의 경쟁이 앞으로 어떤 국면으로 이어질지 시장의 주목이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흐름이 단순한 수치 경쟁을 넘어, 차세대 AI 패러다임의 방향을 좌우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제 관건은 누가 더 빠르고, 누가 더 혁신적으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느냐다.

돌이켜 보면, 변화의 순간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와 판을 바꿔놓았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