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밭을 질주하던 스타플레이어가 이제는 엔진의 울림을 앞세워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 ’안정환’이라는 이름이 축구장 바깥에서 또 한 번 다른 방식으로 빛나고 있다. 그의 자동차 선택엔 단순히 ‘좋아한다’ 이상의 사연이 얽혀 있다.

세상은 그를 화려한 골로만 기억할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유럽에서 느꼈던 시선, 불붙은 페라리의 잔상, 그리고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차 한 대에 담긴 이야기는 결국 한 사람의 성장기와 닮아 있다.

인생 한복판에서 마주친 자동차의 의미

안정환 페라리 자동차 추억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안정환이 처음 이탈리아 땅을 밟았을 때, 주변은 낯선 문화와 기대, 그리고 비교의 시선으로 가득했다. 2001년, 그는 페루자의 유니폼을 입으며 연간 약 45만 달러의 수입과 아파트, 통역 등 여러 조건을 제공받았다. 그러나 훈련장에 들어서자마자, 유명 브랜드로 치장한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이방인이었다.

여기서 무너질 수 없었다. 자신의 존재감, 그리고 ‘한국’이라는 이름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이 있었다. 값비싼 옷과 시계, 명품 자동차까지—이 모든 것이 단순한 사치로 보일 수 있겠지만, 당시엔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방어전’이었다. 결과적으로 첫해 대부분의 수입은 그 결심에 쓰였다.

불길 속으로 사라진 상징의 페라리

불에 탄 페라리 슈퍼카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새로운 시작엔 늘 상징물이 필요하다. 그에게는 페라리 550 마라넬로가 그랬다. 이탈리아의 감성을 집약한 V12 엔진, 유려한 실루엣, 그리고 압도적인 존재감. 하지만, 이 차량의 운명은 뜻밖의 사건으로 결정되었다.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안정환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극적인 골을 넣었다. 감격 뒤에는 예기치 못한 보복이 따랐다. 그날 밤, 분노한 현지 팬들이 그의 페라리에 불을 질렀다. 좋아하던 나라에서, 너무나 갖고 싶던 차를 잃은 순간이었다. 축구의 영웅이었지만, 그 밤 그는 상실을 삼켜야 했다.

시간이 흐르며 달라진 자동차의 기준

이후로도 많은 차가 그의 손을 거쳤다. 벤츠, SUV, 미니밴 등 다양한 모델이 차고를 채웠다. 그러나 이 모든 차를 지나 현재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은 ‘포르쉐 911 타르가’다.

겉으로는 클래식과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디자인. 내부에는 3.0리터 수평대향 6기통 엔진, 그리고 392마력의 강한 심장이 있다. 정지 상태에서 100km까지 단 4.4초면 충분하다. 가격은 1억7천만 원에서 2억 원 사이. 하지만, 그가 이 차에 끌리는 이유는 숫자에 있지 않다.

예전처럼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제는 온전히 자신의 취향과 만족만을 위해 선택한다. 자동차는 더 이상 보여주기 위한 ‘갑옷’이 아니라, 안정환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감정을 담아내는 ‘동반자’가 된 셈이다.

자동차 리스트에 담긴 인생의 굴곡

지금까지 그가 소유했던 차량의 가격을 모두 더하면 11억 원을 훌쩍 넘는다. 페라리, 벤츠 S500, 포르쉐 911 타르가, 각종 미니밴과 SUV까지. 자동차 수집가 못지않은 이 목록엔 그때그때의 심정과 상황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때는 화려함이, 한때는 가족이, 그리고 지금은 자신만의 취향이 기준이 되었다. 자동차마다 담긴 사연이 다르기에, 그의 차고는 단순한 수집품을 넘어 하나의 인생사로 읽힌다.

선택의 변화가 말해주는 것

안정환의 선택은 늘 ‘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로 옮겨왔다. 이제 그의 자동차는 시대의 유행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일상, 그리고 내면의 감정까지 담아내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의 차들이 오늘도 도로 위를 달린다. 때로는 느긋하게, 때로는 속도감 있게.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삶의 방향도 계속 변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변화의 중심엔 언제나 ‘자기 자신’이 있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