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체증이 일상인 도심 오후,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모두의 운전대가 흔들린다.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는 간절함, 그 소리에 담긴 진심은 가끔 허탈함으로 돌아온다. 최근에는 연예인, 기업, 심지어 공공기관까지 구급차를 ‘긴급 이동 차량’쯤으로 여기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
한 연예인이 행사장에 늦자 사설 구급차를 불러 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중의 시선은 냉랭해졌다. 공공의 신뢰로 움직여야 할 시스템이, 어느새 누군가의 편의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

응급의료체계란 결국 한 사회가 위급한 순간 어디까지 연대할 수 있는가의 척도다. 그러나 현실은 “정말 위급한가?”라는 불신이 번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구급차를 ‘생명선’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그냥 ‘빠른 통로’로 생각하는가.

오남용 실태와 발생 배경

구급차 오남용 사례 상황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구급차는 본디 보이지 않는 생명의 끈이다. 하지만, 2013년 겨울 한 방송인의 SNS 사진 한 장으로 이 끈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개인 사정으로 공연장에 늦을 뻔한 그는 구급차 내부 사진을 남겼다. 약품과 의료기기가 빼곡한 공간, “이런 일 저런 일”이라는 농담 섞인 말. 온라인 커뮤니티는 금세 들끓었다. ‘응급도 아닌데 저렇게 써도 되나?’라는 의문이 확산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사설 구급차라 괜찮지 않냐”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구급차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사회적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후로도 비슷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다. 한 가수는 행사장 이동 용도로 구급차를 써 법정에서 벌금형을 받았고, 구급차 기사 역시 법적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심지어 회사의 회식 자리에도 구급차가 등장한 사례까지 알려졌다.

공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직원이나 관계자가 119 구급차로 친척을 병원에 데려다주다 징계를 받는 상황이 반복됐다. ‘공공재’라는 단어의 무게가 이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까.

제도적 미비와 단속 현실

구급차 남용 제도 미비 문제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응급의료법은 분명하다. 구급차는 응급환자 이송만을 위해 달려야 하고, 이를 어기면 운전자와 소속 업체 모두 적지 않은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현실의 골목길은 법보다 넓다. **공공 구급차(119)**와 달리, 사설 구급차는 단속의 손길이 미치기 어렵다. 운영 기준도 느슨하고, 검증도 쉽지 않다. 누군가 요청만 하면 빠르게 달려가고, 실질적인 응급성 판단은 뒷전이 될 때가 많다.

문제는 구급차에 붙은 사이렌과 경광등이 그냥 ‘신호등 무시권’쯤으로 오인된다는 점이다.
일부 연예인이나 기업이 행사장, 회식장 이동에 이용하는 일은 이미 드물지 않다. 그렇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도 ‘진짜 위급한가’라는 불신이 싹틀 수밖에 없다. 결국 응급의료체계 전반이 흔들릴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반복되는 이용과 근본적 대책의 부재

구급차 남용 문제 현장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공공재 오용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반복될 때, 사회 전체가 대가를 치르게 된다. 법적 규정이 있어도 실질적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등 관계 기관이 단속 강화, 운행 기록 관리, 벌칙 규정 신설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사후 처벌에만 의존하는 현재의 구조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제도가 막지 못하는 틈새를 타고 오남용이 반복되고, 공동체 신뢰는 점점 바닥을 향한다.

실제로 익명 제보나 내부 신고로 적발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남용을 적발하기는 역부족이다. 이는 결국 시스템의 신뢰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긴급상황에서의 구조 활동 자체를 방해하기까지 한다.

공공재 인식 전환의 필요성

구급차가 도로 위를 달릴 때 시민들이 길을 비켜주는 모습은 ‘모세의 기적’이라 불린다.
이 안에는 “누구든 생명은 평등하게 구해져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과 연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신뢰가 한순간의 오남용으로 무너질 수 있음을, 최근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공공재는 자유롭게 쓰이긴 하지만, 모두가 아껴야 할 공동의 자원이다.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민 의식 개선, 공동체적 책임의식 교육, 그리고 일상에서 공공성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단속과 처벌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깊은 신뢰의 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