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은 오래된 사진첩 속에서만 빛난다. 요즘 거리에서는 ‘당신의 가족은 어디에?’라는 물음이 낯설지 않다. 더는 ‘한 집, 한 가족’ 공식이 절대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를 ‘가족’이라 부르며 살아간다.

이제 부부라 해도 반드시 함께 잠들 필요는 없다. 선택의 폭은 넓어졌고, 관계의 유연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주말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평일에는 각자의 영역을 지키는 부부도 있다. 때로는,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이라는 굴곡을 지나 다시 인연을 맺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모습은 ‘정상’이라는 단어가 가진 경계선을 희미하게 만든다.

동반자의 의미와 일상의 거리감

함께하지만 따로 사는 부부 모습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함께 산다’는 것은 이제 꼭 지붕 아래 모여야만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 혹시 실감하셨나요? 배우 유혜영과 나한일처럼, 법적으로는 부부지만 각자의 집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가족=동거’라는 공식은 더 이상 필수항목이 아닙니다. 한 공간에서 살지 않아도 서로의 인생에 깊숙이 관여하고, 주말 식사처럼 주기적인 만남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형태가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국내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비동거 맞벌이 가구 수는 약 70만에 이르렀습니다. 맞벌이 부부 10쌍 중 1쌍 이상이 별도의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이나 자녀 교육 등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나만의 생활 리듬’을 지키려는 욕구 또한 큰 몫을 차지합니다.

가족의 개념이 다시 쓰이고 있다

변화하는 가족 형태 이미지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질문, 이제는 크게 의미 없어진 듯합니다. 옛날 같으면 세 번 결혼했으면서 한집에 살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이목이 집중됐겠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한 지붕, 한 가족이라는 전통적 틀보다 관계의 진실성과 선택의 다양성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단순한 가족 해체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가족 구성을 실험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공동 육아, 1인 가구, 반려동물과의 생활, 심지어는 로봇과의 정서적 결합까지—‘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미래학자들은 ‘혈연·혼인 중심’에서 감정과 연대 중심의 공동체로 진행 중이라고 진단합니다.

이혼이나 재혼, 혹은 동거에 대한 낙인은 옅어지고, 각기 다른 인연들이 모여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룹니다. 실패라는 말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선택과 경험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정책과 제도의 변화는 아직 멀었다

비혼 동거 정책 변화 이미지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하지만 이러한 사회 변화가 제도에 곧장 반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한 집에 살지 않는 부부, 혹은 동반자 관계임에도 신분상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이들은 복지와 행정 서비스에서 소외됩니다. 1인 가구가 전체의 절반 가까이 육박하는 지금도, 행정 체계는 여전히 네 식구 기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돌봄, 경제적 지원, 육아의 무게를 오로지 혈연과 혼인에만 맡길 수는 없는 시대입니다. 다양한 가족 형태에 맞는 정책, 그리고 ‘정상가족’이라는 잣대를 내려놓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원하는 관계를 선택하는 삶으로

이제 우리는 사랑하지만 함께 살지는 않고, 결혼하지만 관계의 경계를 재정의하며, 헤어진 뒤에도 친구로 남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결혼은 계약일 수 있지만, 가족은 감정과 신뢰로 만들어집니다. 법의 울타리 바깥에서 서로의 삶을 보듬는 수많은 형태가 존재합니다.

중심은 ‘정상’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각자 어떤 관계를 원하느냐에 있습니다. 각기 다른 선택이 모여 오늘의 가족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