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쉬어야 할 때라고 모두가 말하지만, 월세와 밥값 앞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늘도 동네 마트 계산대에 선 62세 이순자 씨는 계산기에 찍힌 숫자를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직장을 그만둔 지 3년째지만, 국민연금은 아직 그림의 떡. 일할 곳을 찾아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퇴직은 했지만 연금은 아직’이라는 간극이 중장년층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직장에서 손을 놓는 순간, 연금이 들어오기 전까지의 그 오랜 공백. 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오지만, 버티는 건 각자 몫이다. 높아진 기대수명만큼이나 길어진 노후. 그 한가운데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후 빈곤’이라는 그늘에 갇혀 있다.

연금 제도의 그늘에 놓인 5년의 기다림

고령층 연금 공백 현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통장에 월급이 멈춘 뒤,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최소 5년을 더 견뎌야 한다. 1969년생 이후라면, 연금 수령은 만 65세부터다. 그런데 가입 가능한 연령은 만 59세까지로 제한돼 있다. 이렇다 보니 ‘퇴직→무소득→연금수령’ 사이에 최대 6년의 숨구멍 없는 침묵이 생긴다.

그나마 ‘임의계속가입’ 제도로 연금 납부를 연장할 수 있지만,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 직접 신청해야 하고, 보험료도 전액 본인 부담이다. 2024년 11월 기준으로 임의계속가입자 수는 48만 명에 머무른다. 열 명 중 한 명이 채 안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가입 상한 연령과 수령 시기를 맞춰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문제다.

연금 제도와 고령층 노동 현실의 불협화음

고령층 연금 공백 현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노동 시장에서는 오히려 일하는 노인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 퇴직이 곧 은퇴를 의미하지 않는 시대다. 하지만 연금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이들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생계를 위해 편의점, 경비, 청소 등 일자리를 전전하는 중장년들은 “연금만 믿고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정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연금 가입 연령을 수급 개시 연령까지 연장하는 방안이 논의된다. 가입 기간이 늘면, 수급 자격을 얻는 이들이 늘어나고 연금액도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연금 개혁, 재정 안정성 시험대에 오르다

고령층 연금개혁 현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가입 연령을 올리면 보험료 수입은 늘어나지만, 동시에 연금 지급 규모도 커진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만약 가입 상한선을 64세로 높일 경우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 시점이 지금보다 1년 앞당겨질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즉, 더 많은 사람이 연금 혜택을 누리는 대신, 연금 제도 자체의 ‘수명’이 짧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연령 조정만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정년 연장,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고용 시장 구조 개편 등 다양한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기금 고갈 이후의 미래, 세대 간 불균형 우려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나도 연금 지급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부과식’으로 해마다 모은 보험료로 연금을 계속 지급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보험료율이 지금의 세 배 가까이 오르거나, 연금을 받는 연령이 더 늦어질 수 있다. 심지어 지급액이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노후의 삶 자체가 불안정해지는 셈이다.

이런 변화의 무게는 다음 세대, 즉 지금 30~40대가 더 크게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국고 지원 확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남겨진 현실

“노후를 대비하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정해진 틀을 벗어난 삶,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 연금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이들의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현실과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다.
바로 우리 곁의 부모, 이웃, 그리고 미래의 나일지도 모른다.